[여의도풍향계] 지방선거 폐막하자 당권 경쟁 개막…격랑의 여의도
[앵커]
선거가 끝났지만 정치권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권력 재편 과정에서 여야 모두 당내 주도권 경쟁에 불이 붙은 모습인데요.
해묵은 갈등과 원색적인 비난이 재연되면서 민생은 외면받고 있습니다.
최지숙 기자가 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살펴봤습니다.
[기자]
'변화와 개혁 그리고 쇄신'. 정치권의 오랜 수사(修辭)이자 되풀이돼 온 약속입니다.
4년 전과 정반대의 엄중한 민심을 목도한 6·1 지방선거가 막을 내린 뒤, 여야가 숙원 사업처럼 또 한 번 내건 과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여의도에선 기대와 달리, 신의를 저버린 '이전투구'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대선에 이어 또 한 번 전국 단위 선거 승리를 거둔 국민의힘. 그런데, 잔칫집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준석 대표는 지방선거 직후 개혁 이슈를 선점하며 혁신위원회 출범을 띄우고, 우크라이나행에 나섰습니다.
"정당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고 어떤 방면을 지원할 수 있는지 논의하고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를 두고 국회 부의장 출신의 5선 정진석 의원은 '자기 정치'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제기했는데, 갈등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어차피 기차는 간다'고 응수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하나회 척결 과정에서 발언한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를 인용한 겁니다.
그러자 정 의원은 "정치 선배의 우려를 '개소리'로 치부하는 만용"이라고 맞받았습니다.
거친 설전으로 갈등은 확전을 거듭한 가운데, 한편에선 '이준석 발' 혁신위에 대한 또 다른 견제구가 이어졌습니다.
국민의힘에 새롭게 합류한 뒤 차기 당권주자로 떠오른 안철수 의원은, 공천 외에도 포괄적 혁신 노력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선거 제도나 공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혁신이 필요한 굉장히 많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부분까지 포괄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선거 승리를 이끈 젊은 장수와 이른바 '친윤석열계' 의원들, 여기에 유력 차기 주자까지, '삼파전'이 벌어진 상황입니다.
다만 이 대표는 당권 경쟁 구도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정치개혁 추진 의지를 피력한 상태입니다.
"'이겼는데 내려와라' 이런 얘기하는 사람들 있거든요. 정말 어이없습니다. 지금부터 정치개혁, 정당개혁에 매진하겠습니다."
한때 '20년 장기 집권'을 외쳤던 더불어민주당은 매서운 민심의 회초리 앞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대선 결과로 나타난 민심의 심판에 반성하지 않던 민주당은 지방선거 역시 참패하자 휘청였고, 기존 비상대책위원회는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반성과 쇄신을 재차 약속한 민주당은 우여곡절 끝에 '586' 대표주자, 우상호 의원을 필두로 새 비대위의 닻을 올렸습니다.
"민주당의 색깔을 놓치지 않으면서 선거에 진 패인을 분석해 거듭나는 모습을 만드는 데 제 역할을 다 하겠다는 각오를 갖고 있습니다."
8월 전당대회까지 두 달여 간 활동할 민주당 비대위의 최대 관건은 결국 내분 수습.
하지만 당권주자 후보군만 10여 명이 거론되는 가운데 또다시, 해묵은 계파 갈등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지방선거를 진두지휘했던 이재명 의원에 대한 책임론과 함께, 이른바 '친명'이냐 '반명'이냐를 놓고 내홍이 격화한 겁니다.
이 의원을 공개 저격한 친문계 홍영표 의원의 사무실에 조롱성 글이 적힌 대자보가 붙는 등 사태가 악화하자, 친명계는 일단 몸을 낮췄습니다.
전당대회 룰을 둘러싼 신경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적 의견을 얘기하면 그게 또 논란이 돼요. 당 구성원의 60~70% 가까운 분들이 공감대를 형성한 경우에만 룰을 변경할 수 있죠."
잇따른 선거 패배에 대한 성찰과 반성보다는 당권 향배를 둘러싼 혼란만 가중되고 있어, 당분간 당내 구심점 찾기는 난망한 상황으로 보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정당 내 주도권을 둘러싼 이같은 아귀다툼은 이미 처음 보는 모습이 아닙니다.
보수 정당에선 과거 '친이'·'친박' 간 갈등이 불거졌고, 민주당에선 '친문'과 '비문'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편 가르기 정치와 극한 대립 속에, 정작 쇄신의 첫걸음인 국회 정상화는 멀어졌습니다.
21대 국회 후반기 원구성과 민생 법안 처리는 뒷전으로 밀려났고, 국회가 공백 상태를 이어가며 국무위원 후보자들의 인사청문회도 줄줄이 연기됐습니다.
이겼지만 겸손이 없고, 졌지만 반성이 없는 여야.
매미를 노리는 사마귀가 등 뒤의 참새를 보지 못하듯, 눈앞의 실리에 천착해 정작 싸늘한 민심은 보지 못하는 모양새입니다.
미워도 다시 한번, 변화를 기다리는 국민 앞에 쇄신을 향한 약속의 무게를 천금같이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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