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법원으로 간 여의도 정치…사법화 우려 심화
[앵커]
정치권이 법적 다툼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습니다.
당내 문제도 여야 갈등도, 정치적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내지 못한 채 사법부에 그 판단을 맡기고 있는데요.
한국 정치가 제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번 주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양자역학의 불완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물리학자 슈뢰딩거는 한 가지 사고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이른바 '슈뢰딩거의 고양이'인데요.
상자 속 고양이는 살아있을 수도, 또 죽어있을 수도 있는 상태로, 그 상자를 열어봐야 비로소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여의도 정치는 최근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반생반사(半生半死)의 상태에 놓였습니다.
정치적 이슈나 갈등을 모두 사법부의 판단에 맡긴 채, 상자가 열릴 때까지 명운을 기다리는 상황이 재연되고 있는 것입니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은 송사의 늪에 빠졌습니다.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으로 대표직에서 자동 해임된 이준석 전 대표가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시작이었는데,
"당내 민주주의가 훼손된 부분에 대해 재판장님께 드릴 수 있는 말씀을 다 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직무 정지가 결정되며 당은 이의 신청과 집행정지 신청에 나섰고, 이 전 대표는 다시 추가 가처분을 낸 상태입니다.
가처분의 벽을 넘기 위해 국민의힘은 새 비대위 출범과 함께, 이에 앞서 당헌도 대대적으로 손질했습니다.
"찬성 415명, 반대 51명으로 당헌 제13조, 제19조 및 제91조에 의거해 당헌 개정안이 원안대로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당헌의 내용을 구체화 해 해석의 여지를 최소화하고, 이 전 대표의 복귀 가능성도 사실상 차단한 것입니다.
이제 추석 연휴 직후인 오는 14일, 법원의 가처분 심문 결과에 또 한 번 비대위 체제의 운명이 달렸습니다.
정치의 실종은 거대 야당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 공화국'을 우려하며 비판하던 야당도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고발장을 들고 검찰로 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달 전당대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지만,
"절망에 빠진 국민을 구하라, 대한민국에 새로운 희망을 만들라는 지상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법 리스크가 현실화 하며 정부·여당을 향한 전면전에 돌입했습니다.
민주당은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와 소환 통보를 각각 '정치 보복', '망신 주기'로 규정하고, 앞서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꼬투리 잡기식 정치 탄압에 끌려다니지 않을 것입니다. 서면 진술 답변을 했으므로 출석 요구 사유가 소멸돼 (검찰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권력의 죄를 덮고 야당에 대해서는 없는 죄도 만들어 내기 위해 바닥 긁기도 모자라 땅굴까지 팔 기세입니다."
나아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고발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 발의로 맞불을 놓으면서, 정쟁은 격화한 상태입니다.
"이재명의 개인 범죄 의혹을 덮기 위해 당 전체가 개인을 위한 법률사무소이자 경호사무소로 전락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으십니까."
협치를 다짐한 정기국회 개막과 동시에 사정 정국이 펼쳐지며, 연말까지 정쟁만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는 커지고 있습니다.
정치권이 제 기능을 못한 채 이처럼 고소·고발로 얼룩진 모습을 보는 것은, 안타깝게도 이미 익숙한 일입니다.
가장 흔한 단면은 선거 때 자주 접하게 됩니다.
선의의 경쟁을 다짐하고 선거에 임하지만,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을 주고 받다가 결국은 법적 다툼으로 번지곤 했습니다.
"김동연 캠프 측에서는 허위사실을 통해 김은혜 후보 배우자를 공격함으로써 후보자를 비방한 것이므로…고발에 이르게 됐습니다."
"(채용청탁 의혹 관련) 추천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관훈 토론회에서 관여된 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정권 창출 뒤에는 공수를 교체해 전 정권 수사가 관례처럼 이어졌고, 그 종착역에선 결국 헌법재판소까지 달려가 대통령 탄핵을 요구하거나, 전직 대통령을 수감시키는 등 끝 없는 파국을 초래했습니다.
"탄핵 무효! 탄핵 무효!"
"탄핵 무효! 탄핵 무효!"
승자 아니면 패자, 일도양단의 칼자루는 결국 사법부가 쥐곤 했는데요.
그러나 정치의 사법화는 역으로 사법의 정치화로 이어져 '정치 판사', '정치 검사' 논란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양대 정당의 운명이 모두 사법부의 손에 달렸습니다.
국회는 법을 만드는 입법 기관인데 그야말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김재형 전 대법관은 최근 퇴임사에서 사법부에 기대지 말고 입법이나 정치의 영역에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우회적으로 주문했습니다.
정치력 부재를 꼬집는 한편, 사법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뼈 있는 한마디였습니다.
국민이 인내하는 마지막 선 앞에서, 정치적 해법과 대타협의 길을 우선 찾아봐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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