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셀프공천에 옥새파동까지…'공천 갈등' 흑역사
[앵커]
앞으로 총선까지는 50여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인물보다는 정당 위주의 투표 양상이 두드러진 우리 정치구조에서 소속 정당의 공천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결국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여야 할 것 없이 공천 잡음이 불거지는데요.
이번주 여의도 풍향계에선 선거 때마다 반복되어온 공천 갈등의 역사를 지성림 기자가 정리해봤습니다
[기자]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시스템 공천'을 공언했지만, 전략 지역의 현역 의원과 예비후보들이 반발하고 '전·현직 영부인 마케팅' 논란이 불거지는 등 곳곳에서 잡음이 들려옵니다.
보수 세력의 통합으로 탄생한 미래통합당에선 '이언주 전략공천설'과 유승민계에 대한 '형평성' 논란이 터져 나오자 황교안 대표가 직접 집안 단속에 나서는 모습이 눈에 띕니다.
아직은 여야 모두 공천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아 심각한 갈등은 보이지 않지만, 본선 후보 등록일이 가까워지면 현재의 미풍이 태풍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 정치판입니다.
실제로, 역대 총선에서는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시기에 어김없이 공천 갈등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년 전, 20대 총선에서는 '셀프 공천'과 '옥새 파동'이 정치사에 길이 남을 대표적인 공천 갈등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민주당에선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범친노 진영이 비례대표 공천을 놓고 정면충돌했고, 새누리당에선 친박계와 비박계가 대립했습니다.
당시 자신의 이름을 비례대표 2번에 올렸던 민주당 김종인 대표는 친노·친문 진영에서 '셀프 공천'이라고 비난하자 대표직 사퇴를 시사하며 집으로 갔습니다.
"여태까지 내 스스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산 사람인데 그런 식(셀프공천 비판)으로 나를 욕보게 하는 그런 건 내가 절대로 용납을 할 수가 없어요."
결국 '반란'을 시도했던 비대위원들은 김 대표의 '으름장 정치'에 무릎 꿇고 석고대죄했고, 문재인 대통령까지 김 대표 자택을 찾아 설득에 나섰습니다.
"끝까지 당을 책임지고 이끌면서 우리 당의 간판으로 이번 선거를 이끌어주셔서 야권의 총선 승리를 만들어주십사하고 부탁 말씀을 드렸습니다."
당에 복귀한 김 대표는 총선을 진두지휘해 야당이던 민주당을 제1당의 지위에 올려세우는 기염을 토해냈습니다.
한편 새누리당은 진짜 박근혜계를 골라낸다는 '진박 감별사'와 비박계에 대한 '공천 살생부'의 등장으로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청와대와 비박계의 갈등은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 직인을 거부하고 부산으로 가버리는 '옥새 파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최고위 의결이 보류된 5곳에 대한 공천관리위원회의 결정에 대해서 의결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의결이 보류된 5곳에 대해서는 무공천 지역으로 남기겠습니다."
"(김무성 대표는) 당의 직인을 하루빨리 당사에 반납을 하셔서 공적인 그러한 당의 직인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하셔야 할 것입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배신자' 낙인이 찍힌 유승민 의원은 공천에서 배제되자 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습니다.
"공천에 대하여 지금 이 순간까지 당이 보여준 모습,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 보복입니다."
"(유승민 의원은) 우리 당에 입당한 이래 꽃신을 신고 꽃길만을 걸어왔습니다. 중대한 선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 당을 모욕하고 침을 뱉으며 자기 정치를 위해 떠난 것입니다."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새누리당은 결국 20대 총선에서 참패했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에선 거꾸로 친박근혜계가 '공천 학살'을 당했습니다.
통합민주당에는 총선 후보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저승사자'가 등장했습니다.
당시 통합민주당의 박재승 공심위원장은 '호남 현역 의원 30% 배제'의 칼자루를 휘두르며 '공천 특검'이란 별명도 얻었습니다.
"마음은 좀 무겁죠. 보시다시피 그렇게 야단이니까. 우리로서는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서 국민들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드는 후보를 심판의 대상으로 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 위원장이 공천에서 원천 배제된 설훈 의원의 단식을 비롯해 많은 반발을 딛고 '공천 혁명'을 강행했지만, 총선에서 81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집권당이었던 한나라당에선 친이명박계와 친박계의 갈등이 폭발했습니다.
한나라당 공심위원장은 안강민 전 대검 중수부장이었지만, 공천 정국의 실세는 친이계의 핵심 이방호 사무총장.
이 총장은 공심위를 무력화하며 친박계에 대한 공천 배제를 주도했습니다.
"당내 화합하고 개혁 공천하고는 상관없는 거고, 물론 몇사람이 떨어져 나갈 수 있지. 그런데 몇사람 떨어져 나갔다고 해서 당내 화합이, 당이 깨지거나 하는 그런 일은 아니잖아요."
친박계 의원들은 탈당했고, 이들은 친박연대 이름으로 총선에 나가 14석을 따냈습니다.
"박근혜 대표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에선 공천 갈등으로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역대 총선을 보면 대체로 공천 갈등은 선거를 한 달 정도 앞둔 3월에 폭발하곤 했습니다.
이제부터 한주만 더 지나가면 3월에 접어듭니다.
민주당에선 전략 공천과 공천 배제 과정에서 억눌렸던 반발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미래통합당에선 친박계에 대한 공관위의 압박이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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