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 뉴스] 전태일 열사
오늘은 전태일 열사의 50주기입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알리기 위해 몸을 던졌던 그의 죽음에, 우리 사회는 지난 50년간 어떤 응답을 했을까요.
오늘의 그래픽 뉴스, 입니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 열사는 전쟁과 피란을 겪으며 가난과 싸워야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는 열일곱의 나이에 서울로 상경해 평화시장 봉제공장에서 수습 재봉사로 일하기 시작했는데요.
전태일 열사가 일했던 1970년대 봉제 노동자들의 삶은 '열악' 그 자체였습니다.
일어서기는 커녕 허리조차 펴기 힘든 좁고 어두운 다락에 빽빽이 앉아, 잠을 쫓기 위해 약을 먹어가며 하루 15시간이 넘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버는 일당은 50원에서 70원 정도.
당시 커피 한 잔 값이 50원이었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폐병과 관절염, 위장병으로 죽거나 쓰러졌고, 청년 전태일은 참혹한 현실에 절망했습니다.
결국 그는 1970년 11월 13일, 허울뿐인 근로기준법 책을 들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그의 죽음은 한국 사회에 노동자 인권에 대한 화두를 던졌는데요.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지금, 노동계는 이른바 '전태일 3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산업재해에 대해 기업을 처벌하는 법을 제정하고,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을 개정하자는 건데요.
먼저, 산업재해 발생 시 사업주나 경영자에게 엄한 책임을 묻도록 하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영국의 산업재해 사망률을 세계 최저로 끌어내린 비결로 꼽히는 '기업 살인법'을 모델로 한 법안인데요.
정의당이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했고, 보수당인 국민의힘이 함께 힘을 합하기로 해 관심을 모았습니다.
여당인 민주당도 동참하고 있는 만큼 논의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을 모든 사업장에 적용하고 노조 활동의 권리를 보다 넓은 직종에 보장하자는 근로기준법 개정안과 노동조합법 개정은, 현재 정의당을 제외하고는 적극적으로 나서는 정당이 없는 상황인데요.
기업들과의 이해관계 때문에 법 개정에 주저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구의역 김군과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군의 죽음.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택배노동자 과로사…한국은 OECD에서 산업재해 사망률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그동안 전태일 3법과 비슷한 법안이 여러 번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는데요.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말한 50년 전 전태일 열사의 외침에 이제는 응답해야 할 때라는 지적입니다.
지금까지 그래픽 뉴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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