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막전막후] 과거 총리 출신 정치인들, 대권 문턱에서 좌절
[앵커]
여의도 정치권의 모습을 전해드리는 여의도 막전막후 시간입니다.
국회를 출입하고 있는 정치부 정영빈 기자가 나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뉴스를 준비했나요?
[기자]
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전 국회의장을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습니다.
정세균 후보자가 국회 표결을 거쳐 신임 국무총리에 임명되면 최장기간 총리 재임기록을 갈아치운 이낙연 국무총리는 민주당으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정치권에서는 전현직 총리가 될 2명을 유력한 대권후보로 거론하고 있습니다.
여기다 국무총리 출신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야권의 유력한 대권후보인데요.
그래서 이번 주에는 역대 총리들의 대권 도전사로 준비해봤습니다.
[앵커]
저도 지금 막 떠올려도 생각나는 인물들이 있는데 과거에도 대권에 도전한 국무총리들이 꽤 많이 있었죠?
[기자]
말씀하신 대로 재임시절에 언론과 대중의 큰 관심을 받으면서 대권주자로 떠오르는 국무총리들이 몇몇 있었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대권 도전의 문턱 앞에서 좌절해야 했는데요.
박정희 정권의 3공화국 이후 대통령 직선제에서 총리 출신으로 대권을 잡은 총리는 한명도 없습니다.
다만 1979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최규하 총리가 10대 대통령에 올랐지만 유신체제 하에서 체육관 선거로 뽑힌 간선 대통령이었습니다.
[앵커]
구체적으로 한번 살펴볼까요.
일단 총리 출신으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던 인물들을 돌이켜 보면 가장 먼저 김종필 전 총리가 떠오르는데요.
[기자]
맞습니다.
3김 시대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전 총리, 생전에 총리직을 2번이나 역임을 했습니다.
첫 번째는 1971년에 박정희 정권 시절이었는데요.
11대 국무총리에 올랐습니다.
1975년까지 총리를 지냈는데 삼촌인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견제 속에서 대권을 넘봤습니다.
서슬퍼렀던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호텔방을 전전하면서 옛 공화당 세력을 비밀리에 규합하기도 했는데요.
이후에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이듬해 김대중, 김영삼 당시 후보와 함께 대선에 출마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선거 결과는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승리로 끝났죠.
이후에 이 김 전 총리는 1990년에 3당 합당을 통해서 여권으로 옮겨오게 됩니다.
29년도에는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후보를 지원했고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당선이 됐었죠.
2인자로 자리매김을 했는데 민자당을 이끌던 당시 상황에서 민주당 내에서 민주계를 중심으로 해서 김종필 당시 대표가 구시대의 인물이다 이렇게 얘기하면서 김종필 당시 대표를 축출하려는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었습니다.
이 때문에 김종필 당시 대표가 민자당을 탈당을 해서 자민련을 창당을 했는데요.
아시다시피 자민련은 충청권에서 충청도 맹주로 떠오르면서 당시에 확고한 원내 교섭단체로서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습니다.
1996년 총선에서 자민련이 50석을 얻었는데요.
이 같은 어떤 지지도를 바탕으로 동력으로 삼아서 97년도 대선에도 김종필 전 총리가 도전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97년에는 김대중 당시 후보와 김종필 전 총리가 DJP 연합을 형성하면서 대선에서 승리를 했죠.
그때 당시 김종필 후보가 김대중 당시 후보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또다시 킹메이커에 자리하게 됐습니다.
[앵커]
킹메이커라는 말이 참 뼈아프게 다가올 것 같은데 당시에 그러면서 김종필 후보가 오르면서 김종필 전 총리가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르게 되는 겁니까?
[기자]
맞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이 도면서 국민회의와 자민련 공동 정권이 출범했죠.
이때 김종필 총리가 두 번째 총리직에 오르게 됩니다.
당시 김 전 총리의 발언을 한번 들어보시겠습니다.
"저와 자민련은 공동 정권의 한 주체로서 산적한 국정 현안을 능동적으로 풀어나가는 데 국민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사실 이때가 김종필 전 총리의 정치적인 전성기였다, 이렇게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텐데요.
그렇지만 2000년 2월에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 사이에 어떤 정치적인 의견 대립이 심화되면서 DJP 연대가 깨지게 됩니다.
이후에 김종필 총리의 정치적인 입지도 급격하게 악화하게 되는데요.
특히 17대 총선에서는 김종필 전 총리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가담을 했었는데 이 역풍을 맞게 되면서 17대 총선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당시 김 전 총리가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섰는데 1번으로서도 낙선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는데요.
결국에 김 전 총리는 10선 고지에는 오르지 못하고 9선을 마지막으로 정계를 떠나면서 영원한 2인자로 남게 됩니다.
[앵커]
김종필 전 총리에 이어 대통령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총리를 꼽으라면 이회창 전 총리가 빠질 수 없죠?
[기자]
말씀하신 대로 이회창 총리는 가장 대통령에 근접했던 총리였다 이런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법관 출신으로서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시절에 엄격한 선거관리를 하면서 이른바 대쪽 이미지를 얻었는데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는 감사원장에 임명이 됩니다.
9개월 동안 감사원장을 지내면서 청와대 그리고 국방부에 대해서 메스를 들이대면서 어떤 감사원의 위상과 독립성을 크게 높였다 이런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때 대쪽 이미지가 강하게 만들어졌는데요.
이 같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해서 1993년도에 국무총리에 기용이 됐습니다.
그런데 통상적으로 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는 그런 역할을 하는 데 그쳤다는 것이 그때까지의 총리 이미지였는데 이회창 당시 총리는 소신 있는 행보를 보이면서 이른바 책임 총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특히나 당시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에게도 굽힘이 없이 김영삼 대통령과 각을 세웠는데요.
헌법에 보장된 총리의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이런 모습을 보였습니다.
당연히 김영삼 대통령과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에 취임한 지 넉 달 만에 김영삼 대통령과 갈등 끝에 국무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그런데 현직 대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