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으로 불렸던 김복동 할머니가 어젯밤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본의 역사왜곡으로 나빠진 한일 관계가 이젠 수렁에 빠졌는데요.
문재인 대통령도 빈소를 찾았습니다.
안보겸 기자가 김 할머니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는 14살이던 1940년 일본군에 납치됐습니다.
이어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끌려다닌 김 할머니는 22살이 돼서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1992년)]
"그리 끌려다니는 거를 갖다가 말로 어떻게 다 표현할 수 있나, 이 사람아. 말로는 다 표현 못 하네."
1992년 피해 사실을 공개한 김 할머니는 일본은 사죄하라고 평생 외쳤습니다.
세계인권대회 등에 참석해 일본군의 만행을 알렸고, 세계 곳곳을 돌며 여성 인권 운동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며 1인 시위에 나섰습니다.
[김복동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난해 9월)]
"우리가 위로금 받으려고 이때까지 싸웠나? 위로금이라고 하는 건, 1천억 원을 줘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
최근 병원으로 옮겨진 김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도 "끝까지 싸워달라"는 당부했습니다.
[윤미향 /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를, 이럴 수가 있나 하는 그런 절규에 가까운 표현을 해주셨고요."
병상에서도 위안부 문제 해결을 염원했던 김 할머니는 끝내 진심 어린 사죄를 듣지 못하고 향년 93세의 일기로 눈을 감았습니다.
앞서 이모 할머니도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만 남게 됐습니다.
채널A 뉴스 안보겸입니다.
[email protected] 영상취재 : 한일웅 정기섭
영상편집 : 이혜진
그래픽 : 윤승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