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학살 100년째 미궁…"물에 처넣고 콘크리트 부어"
[앵커]
일본의 조선인 강제 징용과 같은 한일 간 과거사 문제는 풀리지 않는 숙제로 남아 양국 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과거사도 수두룩합니다.
1922년 무렵 일본 니가타현에서 벌어진 이른바 '나카쓰가와 조선인 학살 사건'도 그 중 하나인데요.
관련 증언들이 꽤 나왔지만 일본 당국은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도쿄 이세원 특파원이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기자]
일본 니가타현의 가파른 산 줄기 사이로 맑은 강물이 흐릅니다.
인적이 드문 근처 마을에는 허물어져가는 집이 방치돼 있습니다.
이곳은 100년전 일제가 당시 기준 동양 최대 발전소인 나카쓰가와 발전소를 지을 때 조선인이 모여 살았던 곳입니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속여서 데려 온 것입니다.
낯선 곳에 온 조선인을 기다린 것은 중노동과 감금 생활이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감옥방이라 불리는 합숙소를 탈출한 조선인도 있습니다.
붙잡히면 혹독한 대가를 치렀습니다.
"탈주자가 있는 경우에는 무시무시한 폭행이 전개됐습니다. 여름에는 장지문을 열어놓으니 그 모습이 잘 보였고."
길을 잃고 추위와 배고픔 속에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달아나면 험한 꼴을 당한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잔인한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산으로 달아난 분들이 민족의상(조선옷)을 입은 상태로 나뭇가지에 매달아져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신문에 '학살된 조선인의 시신이 강을 따라 자꾸 흘러 내려온다'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습니다.
한국에서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학살의 결정적 증거를 파악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제 뒤에 보이는 것이 나카쓰가와 제1발전소입니다.
건설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사건 발생 약 60년 후 역사 교사인 사토 다이지씨가 주민을 상대로 조사했더니 학살을 시사하는 증언이 꽤 있었습니다.
"콘크리트 속에서 백골 무더기가 나왔다" "한겨울에 손을 묶고 강물에 밀어넣었다" 심지어 "조선인을 물속에 넣고 콘크리트를 흘려넣은 것 같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당국은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았고 이런 역사를 기록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일본 니가타현 쓰난마치에서 연합뉴스 이세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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