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만세 운동 직후 일제는 제암리 학살 사건을 저질렀지요.
50년 전 일본 내 양심 세력이 사죄 위원회를 만들고, 보상을 위한 모금활동까지 했었습니다.
그 기록을 채널A가 단독으로 입수했습니다.
도쿄에서 김범석 특파원입니다.
[리포트]
[현장음]
"3·1 운동 때 제암리에서 순국한 선열들의 위령제가 엄수됐습니다."
교회에서 무고한 주민 23명이 일본군에 의해 잔인하게 학살된 제암리 사건,
자국 정부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해, 일본 내 양심 세력 15명은 한일 국교 수립 2년 뒤인 1967년 사죄 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36년 간 일본의 식민 통치. 온갖 비도덕한 행위가 있었다. 많은 일본인이 참여해야 (사죄의) 의미가 있다"
미군에 의한 원폭 투하보다 일본군이 벌인 제암리 학살이 더 잔인했다고, 자신들이 발간한 신문에 쓰기도 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보다 더 잔인한 범죄를 잊으려 한다."
당시 위원들이 작성한 회의록에는 보상을 위한 모금 현황, 언론 홍보 방식 등이 자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하라다 교코 / 고려박물관 이사]
"3·1운동은 한국의 가장 중요하고 긍지 넘치는 민족운동입니다. (모금 운동 등) 일본인의 마음을 알아준 한국인이 있었다는 것이 가장 기쁩니다."
독립기념관에 아카이브 형태로 보관됐던 자료가 일반인에게 전시되는 것은 처음으로,
특히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본 시민 8명이 자비로 전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오야기 준이치 / 자원봉사자]
"정부 차원의 (한일 관계가) 상당히 어려워졌지만 이럴 때일수록 (3·1운동의 역사를) 배우면서 다른 일본인에게 제대로 전하고 싶어요."
도쿄에서 채널A 뉴스 김범석입니다.
[email protected] 영상취재: 박용준
영상편집: 민병석
그래픽: 김종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