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와 70년대 우리 정부가 독일에 파견한 간호사 만여 명 가운데 상당수는 다른 국가로 이주해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하는데요.
독일 간호사에서 캐나다 간호사로, 다시 사업가와 장학재단 이사장으로 끊임없이 새 길을 개척해 온 동포를 소개합니다.
[이영희 / 1966년 파독 간호사 : (독일에서) 한국 간호사를 굉장히 대우했어요. 우리가 병원에서도 그렇고 다른 (독일) 간호사들이 우리를 차별한다든지 이런 걸 못 느꼈어요. 저는. 그래서 더 그 독일 사람들한테 대한 그 좋은 점(장점), 그 독일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일하고 이런 거를 항상 우리도 저렇게 하면 참 (한국도) 좋아지겠다는 이런 생각을 늘 했어요. 독일 사람들이 하는 방식, 인내, 그 성실함 그걸 가지고 매일매일 살아야 한다, 이게 항상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이영희 / 1966년 파독 간호사 : 아무나 (해외로) 떠날 수도 없는데 저는 우연히 토론토 정신병원에 저기 지원을 했더니 아 좋다고 오라고 그래서 ( 비자를 받았어요.) 처음에 왔을 때는 정식 간호사(RN)가 아니고 그 정신병원에서 1년 정도 근무하니까 시험을 치라 하더라고요. (4과목 중) 외과 과목이 좀 기준점에서 조금 모자랐던가 봐요. 그래서 한 번 더 치라는 통보가 와서 또 더 쳤더니 그냥 네 개가 다 붙었어요. 그래서 간호사가 된 거예요. (은퇴 후 도전한 식품 사업도) 어떠한 일에 부딪혀서 자기 거 할 때 그거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면 뭔가 길이 생기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서 마라톤 할 때 똑같이 떠났는데 인내한 사람 끝에 또 들어오지만 인내하지 못하면 중간에서 패하잖아요. 바로 그게 비즈니스의 비결인 것 같아요.]
[이영희 / 1966년 파독 간호사 : 그 스코필드 장학회는 이사는 몇 명 안 돼요. 그래도 그 몇 명 안 되시는 분들이 한 100명의 가치를 펴고 있어요. (회장 시절) 이제 그 (스코필드 박사의) 흉상을 만들어서 한국에 우리 저기 짐 올 때 같이 왔는데 그게 2천 파운드에(약 907kg) 그게 그런데 그걸 옮기는 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몸이 안 좋은 사람을 돌보고 그 사람을 빨리 회복시키는 그 역할을 하는 게 간호사니까 지금도 우리 내 사는 그 주변에 그리고 아픈 사람들 이런 사람들 도와서 그 사람들이 회복하는 거 그 방향을 항상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그 제일 사람이 그 행복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 아닌 ... (중략)
YTN 강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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