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1년'
고려인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상황은?
김 아나스타샤 / 고려인·졸로토나샤
"제 이름은 김 아나스타샤입니다. 고려인이고 평생 우크라이나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우크라이나 중앙에 있는 작은 도시, 졸로토나샤입니다. 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가족과 흩어진 적은 없습니다. 우리는 그래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서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현재 이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지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한 곳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언제 러시아의 미사일 포격을 받을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과 제 가족은 정말 운 좋게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에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닙니다. 우리 모두 목숨을 언제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나라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살고 있어요. 전쟁 초반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인프라 시설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거주지도 공격했거든요."
전쟁 중 태어난 아이
'엄마는 위대했다···'
김 아나스타샤 / 고려인·졸로토나샤
"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 저는 임신 막달이었어요. 2월 24일은 평범한 아침이었어요. 첫째 아들은 학교 갈 준비를 했어요. 그때 온라인을 통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전쟁이 시작된 거예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했어요. 정말 끔찍했어요. 아무도 그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정부의 발표가 있기까지만을 기다렸죠. 일단 모든 짐들을 싸고 물이나 기본 식량들도 챙기고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공습경보가 울린 거예요. 그때 우리도 상황을 모두 인지했지만, 저는 만삭이라 다른 지역까지 대피하지 못했어요. 대신 지하에 대피공간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경보가 울릴 때마다 내려갔죠. 당시 만삭에다 어린 아들까지 있었던 저는 경보가 울릴 때마다 내려갔다가 올라오고, 차가운 지하 바닥에 대피하는 것 자체가 정말 힘들었어요. 아이는 다행히 빠르고 건강하게 낳았어요. 하지만 저는 분만 당시 출혈이 심했죠. 그때 또 공습경보가 울려서 지하로 대피해야 했어요. 제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어요. 3층에서 지하로 내려가야 했는데 저는 거의 걷지도 못했던 터라 지하에 도착했을 때 기절했어요. 그때 기억나는 건 제가 아이들을 위해 강해져야 한다고, 아이들이 날 기다리고 있다고 무의식중에도 계속 되뇌었던...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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