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내 쓴 전기료 고지서가 이제 속속 나오고 있죠? 이번 여름엔 다들 누진제에 대해서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셨을 텐데요.
전기를 많이 쓴 사람은 실제 쓴 양보다 많은 비용을 내라는 게 누진제죠. 기본적으로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입니다.
그런데 기록적인 폭염이 강타한 올 여름 같은 경우에는 누진제가 적용되다보면 에어컨을 조금 더 틀었는데도 요금은 확 뛰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반 4인 가정 월평균 전기 사용량이 대략 340~350kWh 가량으로 약 6만원의 전기요금(정부의 한시적 하계할인 방침에 따르면 4만 6000원 정도)이 나옵니다.
만약 여름에 스탠드형 에어컨을 하루 4시간 튼다면 전기 사용량은 600kWh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요금은 22만원, 하계 할인을 받아도 18만원 수준으로 껑충 뛰죠. 쓴 전기량은 2배를 안 넘는데 요금은 4배를 더 내야 하는 시스템이니, 소비자들이 화날 만 하죠?
7월 검침 기준으로 36만 5천가구 정도의 전기요금이 전월의 무려 2배로 뛰었다고 합니다. 7월보다도 더웠던 8월의 고지서가 나오면 서민들 등골은 더 휠 것 같네요.
정부의 하계 할인은 누진구간을 조금(50kWh) 늘렸을 뿐인데다 한시적인 방책이어서 언발에 오줌 누기 수준입니다.
이번 기회에 아예 누진제를 전면 손질하라는 목소리가 그래서 높았던 거고요.
◇ 누진제, 뭣이 중해서 요금 편차가 심한 걸까?
일단 현행 누진율부터 손봐야 합니다. 누진율이 너무 세기 때문입니다. 최저구간(1단계)부터 최고구간(6단계) 사이 격차가 11.7배. 미국 1.1배, 일본 1.4배, 대만 2.4배 등 외국 사례와 비교해도 너무 크죠.
게다가 누진제는 가정용 전기에만 적용됩니다. 그런데 가정이 쓰는 전기는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전체 사용량의 56%는 산업용 전기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산업용 전기엔 누진이 적용되지 않죠. 산업용 전기는 누진 없이 그냥 1kWh 당 81원입니다. 가정용으로 치면 낮은 단계인 2단계에 해당됩니다.
이렇다 보니 왜 국민은 쓴 것보다 더 내고, 기업은 덜 내냐는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겠죠.
또 일반 국민들에게 전력 낭비의 책임을 묻는 것도 어불성설입니다. 우리나라의 1인당 가정용 전력 소비량은 OECD 평균의 55%, 즉 절반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만큼 일반 국민들은 전기요금 많이 나올까봐 아끼고 덜 써가며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최고단계인 6단계 이상의 전기사용량을 기록하는 가구는 전체의 1.2% 정도입니다. 나머지 대다수 가정은 그 이하 구간에 몰려있고, 이들이 산업용보다도 비싼 요금을 적용받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죠.
특히 집에 노약자가 있거나 식구가 많아서 에어컨을 어쩔 수 없이 틀어야 하는 가구는 고소득 가구가 아닐지라도 수십만원의 요금을 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현행 누진제의 왜곡된 부분, 고쳐지나?
그래서 당정도 지금 전기요금 TF를 구성했습니다. 논의는 일단 비공개로 이뤄지겠지만, 연말까지 누진제 단계를 2~3단계 정도로 줄이고 누진율도 2배 안팎으로 낮추는 등의 전면 개편을 구상한다는 계획입니다.
물론 누진제가 완화되면 낮은 단계를 쓰던 저소득층의 부담이 늘어날 소지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에너지 바우처 등의 복지로 보완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민 신뢰 회복이 먼저입니다. 산업용 전기요금과 가정용 전기요금의 형평성, 한국전력에 대한 신뢰 말입니다. 한전은 영업이익과 생산원가도 투명하게 공개해,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합리성을 인정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고요? 전기는 이제 생필품이고, 폭염은 내년에도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죠. 현행 누진제가 마지막으로 바뀐지 10년이 넘었습니다. 땜질식 '할인책'말고 현실에 안 맞는 부분은 제대로 손질해야 적어도 국민들만 '불합리한 소비'를 강요받는 것 같은 피해의식은 덜 느끼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