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의 발자취를 정리하는 YTN 특별 기획, 오늘은 그 세 번째 시간으로, 늘 생사의 갈림길에 서야만 했던 임시정부 요인들의 삶을 따라가 봤습니다.
그만큼 임시정부를 향한 일제의 추적은 집요했는데요,
항일 전선에 함께 나선 중국의 도움이 있었기에 목숨을 건 독립운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최민기 기자가 역사의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기자]
윤봉길 의거의 배후가 자신임을 밝힌 김구 선생은 일제의 추적이 극심해지자 상하이 인근 자싱으로 몸을 숨깁니다.
중국 국민당 간부 추푸청의 도움을 받은 김구 선생은 중국 광둥 상인으로 신분을 숨기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일제의 밀정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 속에 살았습니다.
김구 선생이 지냈던 2층 침실에는 이렇게 발판을 들어 올리면 1층으로 통하는 비상 탈출구가 나옵니다.
이 통로는 호수로 바로 연결돼 있어서 언제든 준비된 배를 타고 도망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이곳에서 김구 선생은 낮에는 배에서 지내고, 밤이 돼서야 땅에 오르며 외부와 차단된 삶을 산 것으로 전해집니다.
[추리쩐 / 추푸청의 손녀 : 김구 선생이 당시 자싱에 계신다는 사실은 절대 알려져선 안 된 비밀이었습니다. 할아버지(추푸청)와 그 아들 부부 외에는 그 어떤 사람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김구 선생이 그저 광동 상인인 줄만 알고 있었습니다.]
당대 중국의 혁명 원로였던 추푸청이 이처럼 김구 선생을 도운 건 일제의 침략에 맞선다는 연대 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추리쩐 / 추푸청의 손녀 : 항일은 한·중의 공동 목표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는 중국 인민을 대신해 복수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추푸청)는 위험을 무릅쓰고 김구 선생을 보호했습니다.]
중국 국민당 정부는 일본의 패망 전까지 임시정부 요인들이 피신하고 활동할 수 있게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전해집니다.
[김희곤 / 안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이 백수십 명 이렇게 될 것 아니겠어요. 그들이 이동하면서 무슨 교통기관으로, 어떤 집에 머물며, 이런 것들이 전부 보장되는 것이죠. 그래서 중국의 모든 지방의 성장이 나서서 이들을 인솔해줬다.]
일제의 집요한 추적 속에서도 독립운동을 멈출 수 없던 고난의 시기.
임시정부는 중국과 항일전선을 구축하며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굳건히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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