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정당 대선 후보는 유승민 의원으로 확정됐습니다.
유승민 후보가 걸어온 길, 짚어보겠습니다.
1958년 1월 7일 생, 올해로 만 59세.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유신정권의 뜻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법관을 무더기로 면직시킨 '사법파동' 때 판사 옷을 벗은 유수호 전 의원이 아버지입니다.
빼닮은 외모만큼이나 아버지와 아들의 행보도 많이 닮았습니다.
대구 경북고 선후배로, 대구를 기반으로 같은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그래서 유승민 후보에게 붙는 단골 수식어는 '2세 정치인'입니다.
안경을 쓴 지적인 이미지 때문일까요?
유복한 집안에서 순탄하게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것 같은, 게다가 모범생하고만 친구였을 것 같은 유승민 후보의 어린 시절은 이미지와는 달랐습니다.
유승민 후보는 어릴 적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유년 시절 추억을 꺼내며, 중이염에 걸린 자신의 병원비를 마련하려고 영화관 앞에서 암표를 팔던 어머니를 회상하기도 했습니다.
공부만 잘했을 것 같이 생겼지만, 놀기도 좋아했던 '튀는' 모범생이었습니다.
두 번의 가출도 했습니다.
모교 경북고는 말 그대로 야구 명문고였지요.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리는 청룡기 대회를 보기 위해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합니다.
1박 2일 동안 좋아하는 '야구'를 위한 가출을 한 겁니다. 지금까지도 야구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합니다.
다른 한번은 '친구'를 위한 가출이었습니다
학교 선생님에게 부당한 이유로 맞은 친구가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로 가출을 했는데, 이 친구를 찾아오기 위해 친구 따라 가출한 겁니다.
걱정하신 부모님에게 사죄하는 의미로 집으로 돌아올 땐 머리를 빡빡 깎았다고 합니다.
1976년 대학입학 예비고사에서 전국 차석을 차지했습니다.
법조인 가족의 맥을 잇지 않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입학했습니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 KDI 연구위원이 돼 12년간 경제학자로 활동했습니다.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2000년 당 싱크탱크였던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발탁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였습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장 전 총재의 성공을 위해 힘을 쏟았지만 실패했죠.
야인으로 머물던 유 후보는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했고, 박근혜 ...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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