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행 : 이광연 앵커, 박석원 앵커
■ 화상중계 : 백경진 / 제주 4·3 범국민위원회 이사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큐]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주 4.3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 앞서 알려드린 제주에서는 75주년을 맞은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이 봉행됐습니다. 서울에서도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기념행사가 있었는데요. 오늘은 백경진 제주 4·3 범국민위원회 이사장을 연결해서 제주 4.3의 의미 그리고 남은 과제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이사장님 안녕하십니까?
75주년 제주 4.3 추념식이 오늘 있었습니다. 75년 딛고 섣노라라는 주제가 눈에 띄었는데 먼저 4.3 사건의 의미부터 간단히 짚어주시죠.
[백경진]
제주 4.3은 특별법에 의하면 1947년 3월 1일 3.1 기념식에 제주도민 3만여 명, 모슬포 5만 5000여 명 해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운집해서 통일된 나라, 자주독립을 주장했습니다마는 그 이후에 제주도민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탄압하는 과정에서 이것에 항쟁하고 그다음에 그 항쟁을 무자비하게 국가 폭력으로 대한 전무후무한 6.25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그러한 현대사의 비극입니다. 그렇게 간단히 한번 말씀을 드리고요. 차차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대사의 비극, 4.3 사건 설명하셨는데 용어는 어떻습니까? 4.3 사건 언론에서 이렇게 부르고 있는데 혹시 5.18 민주화 운동처럼 공식 용어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하다 이런 주장도 언론을 통해서 본 적이 있거든요.공식적인 명칭이 4.3 사건인 건가요?
[백경진]
특별법에서는 4.3 사건으로 되어 있는데요. 저희들은 사실 제주 4.3이라고만 부르고 있습니다. 뒤에 명칭을 부르기 위한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래서 원래는 서울에서 기념식을 하면서 제안을 시작했습니다. 3월 1일 과연 그날 많이 모였던 사람들은 무슨 소리를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가 하는 숙제를 한번 던져본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지만 해방된 정국에서 통일된 나라와 예를 들면 그 당시 미, 소, 중 외세를 배제하고자 하는 자주독립을 그 당시에 주장을 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시작점을 우선 먼저 통일된 국가와 자주독립이었다고 하는 것을 먼저 한번을 말씀을 드리기 ... (중략)
YTN 엄윤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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