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눈물로 닻 올린 국정조사…진상 규명까지 험로 예고
[앵커]
158명의 꽃다운 목숨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가 닻을 올렸습니다.
야당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에 반발해 거부 의사를 밝혔던 국민의힘도 복귀를 결정하면서, 여야 합동으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는데요.
'그날'의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지, '여의도 풍향계'에서 최지숙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자]
전 국민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린 지난 10월 29일, 그로부터 벌써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유족들은 살을 에는 아픔을 견디고 있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이 비극적 참사의 진실은 아직 온전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수사와 병행해 국회가 국정조사 실시를 결정한 배경이기도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출범한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의 활동 기간은 모두 45일.
다음 달 7일이면 예정된 기한이 종료되는데, 약 보름 정도를 남기고서야 본격적인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야당의 해임건의안 처리와 내년도 예산안 줄다리기로 여야는 장기간 대치를 이어왔습니다.
국민의힘은 앞서 국조특위 위원들이 전원 사퇴 의사를 밝힌 뒤 당 지도부도 '선 예산, 후 국조' 방침을 고수해왔는데요.
"예산 처리하고 국정조사를 하기로 했는데 아직 예산 처리가 안 됐기 때문에…아직 (국조위원) 사퇴 여부 자체를 수리할지 안 할지 결정하지 않았고…"
지난 20일, 유가족 간담회 이후 기류가 바뀌었습니다.
유족들은 '국정조사를 협상의 도구로 삼지 말라'며 오열했고,
"희생자들이 협상의 도구입니까? 예산안 처리와 이상민 장관 해임안 결의가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무슨 관련이 있길래…"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알고 싶다고 읍소했습니다.
"다른 것 바라지 않습니다. 국정조사를 제대로 하셔서 아이들이 어떻게, 왜,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를 계기로 주호영 원내대표가 국조특위 위원들의 사표를 반려하며, 여당 위원들은 복귀를 선언했습니다.
"진상과 책임규명,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라는 국정조사 본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국정조사에 참여하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반쪽 국정조사'에 대한 우려는 이로써 일단 불식됐습니다.
여야 합동으로 국정조사에 돌입했는데, 그 첫 일정으로는 현장조사가 실시됐습니다.
함박눈이 내리던 지난 21일, 특위는 녹사평역 시민분향소로 향했습니다.
일부 보수단체의 '국정조사 반대' 집회에 유족들은 울분을 터뜨리며 '진실 규명'을 외쳤습니다.
"국정조사, 진실규명!"
"진실을 잘 규명하고 책임 소재를 규명하면서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드는 국정조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지난 21일과 23일 두 차례의 현장조사에선 서울경찰청과 서울시청, 행정안전부 그리고 용산구청 등 관계기관을 찾아, 여야가 한목소리로 참사 대응의 적절성을 질타했습니다.
"11건 모두가 팀장까지 보고를 못했다, 그러면 최초 접수자가 판단을 잘못해서 별것 아니라고 무시한 겁니까? 묵살한 겁니까?"
"112 치안종합상황실의 시스템이 무너진 거예요. 시민들의 신고를 어떻게 접수하고 처리하는지에 대한 기본적 훈련이 안 된 것입니다."
이처럼 간신히 첫발을 뗐지만, 불씨는 여전합니다.
여당은 최근 민주당 신현영 의원의 '닥터카 탑승 논란'을 놓고 날 선 비판을 이어갔습니다.
"왜 불과 15분 만에 현장을 이탈해서 보건복지부 장관의 차를 타고 이동했는지 국정조사 과정에서도 명백히 밝혀져야 할 것입니다."
국회 윤리특위에 신 의원에 대한 징계안도 제출한 상태입니다.
야당은 일부 여권 인사들과 극우 유튜버의 2차 가해성 발언을 들어 반격에 나섰습니다.
"유족을 끊임없이 조롱하고 야유하는 극우 유튜버들의 극악한 행태는 살아있는 사람들마저 사지로 밀어 넣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시작부터 첨예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남은 과정 역시 순탄치는 않아 보입니다.
지난 19일, 국조특위 야3당 위원들의 의결사항에 따르면 현장조사 이후로는 연내 기관보고와 내년 초 세 차례의 청문회가 예정돼 있습니다.
도화선 중 하나는 증인 채택.
벌써부터 국민의힘은 민주당 신현영 의원을,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각각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맞붙었습니다.
여기에 기간 연장을 둘러싼 대립도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국민의힘은 남은 기간 충실히 조사를 진행하면 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예산 처리 지연으로 시간을 허비한 만큼 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에선 증인 채택 등을 둘러싼 갈등으로, 청문회조차 열지 못한 채 결과 보고서 채택 없이 막을 내렸습니다.
이 같은 전철을 밟지 않고 참사의 진실과 책임 소재를 명명백백 밝힐 수 있을지, 시간은 없고 갈 길은 멀어 보입니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지만, 인재(人災)는 반복돼 왔습니다.
책임 공방이나 이해득실을 둘러싼 셈법 속에, 본질적인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은 멀어진 탓입니다.
대학 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과이불개'(過而不改)가 꼽혔습니다.
허물을 알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잘못이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소모적인 논쟁을 멈추고 진실을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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