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풍향계] 대선판에 소환된 '기생충·미나리'…영화의 정치학
[앵커]
우리 삶을 축약해서 보여주기도 하고, 사회 문제를 날카롭게 꼬집기도 하는 영화 속 장면 장면은 때론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때문에 '종합 예술'이라고도 불리는 정치의 역영에도 종종 소환되곤 하는데요.
대선 국면 '영화의 정치학' 이번 주 대선 풍향계에서 박현우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기자]
이번 주 대선 풍향계, 영화의 한 장면으로 시작해 봤습니다.
많이들 아시겠지만, 오스카상 수상작이자 국내에서만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기생충입니다.
지난주 민주당 대선 주자 간 토론회에서 기생충 내용이 언급되며 다시 한번 화제가 됐었죠.
"송강호의 집은 반지하여서 비가 오면 비가 그대로 집에 쏟아져요. 이선균 집은 비가 오면 그 비를 감상하죠. 그런데 그 이선균과 송강호 두 분에게 똑같이 8만 원을 주는 것이 정의로운 것인가?"
봉준호 감독도 '같이 삶'의 어려움을 다룬 영화라고 밝힌 것처럼, 이낙연 후보는 영화의 한 장면을 통해 양극화 문제를 화두로 던지며, 동시에 경쟁자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을 깎아 내렸습니다.
이재명 후보 역시 영화 속 인물의 상황에 빗대 응수했습니다.
"송강호에게만 지원하겠다고 세금 내라고 하면, 이선균 씨가 세금을 안 낼 겁니다."
영화적 상상력은 '장삼이사'들의 삶에 대한 공감대, 또 이를 바탕으로 바라보는 사회 문제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문에 정치인들의 입장에선 때때로 좋은 참고서가 되기도 하는데요.
어떤 영화를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 또 어떤 가치를 끄집어내는지를 살펴보면, 각 정치인이 생각하는 '시대 정신'을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민주당 후보들은 최근 TV 토론회에서 각자의 '인생 영화'를 공개했는데, 이재명, 이낙연 후보는 각각 웰컴투 동막골과 1987을 감명 깊게 본 영화로 꼽았습니다.
정세균 후보는 '학교 가는 길'을, 박용진 후보는 '국가대표'를, 김두관 후보는 '변호인'을 인생 영화로 꼽았는데, 그 배경 또한 다양했습니다.
"(장애인)학교를 설립하기 위해서 어머니가 무릎을 꿇고 절규하는 내용이…장애인이 살기 좋은 나라가 진짜 좋은 나라고 선진국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누구나 쓰라린 경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덕에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려고 하고 평등과 공정의 가치를 가슴 속 깊이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변호인은 국민을 위해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아픈 곳에서 가장 뜨겁게 타올랐던 인간 노무현의 이야기입니다. '국가란 국민입니다'가 저를 울렸습니다."
'정치 뉴스'가 아닌, 스크린을 통해 대중 앞에 설뻔한 주자도 있었습니다.
바로 미국 흑인 여성 과학자의 활약을 그린 '히든 피겨스'를 인생 영화로 꼽은 추미애 후보입니다.
"(영화배우의 꿈을)접은 지 꽤 오래됐고요. 저 자신을 알고부터…연기를 좀 못한다고 하는 것이고요. 저 꿈을 가지게 된 것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보고 감명 깊어서…"
영화를 활용한 마케팅 경쟁 속, 지난주 민주당에서 '기생충'이 회자되는 사이 국민의힘에서는 또 다른 오스카상 수상작인 '미나리'가 소환됐습니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전 검찰총장 간 갈등이 격화하는 상황에 대한 경고 차원이었는데, 당 대외협력위원장인 권영세 의원은 미나리에서 조연을 맡은 윤여정 씨를 그 예로 들며, 이 대표에게 대선 국면에서 주연들, 그러니까 대권 주자들을 빛나게 하는 조연 역할을 해달라면서 자제를 당부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뿐인 '왕좌'를 차지하기 위한 쟁탈전을 다뤘다는 측면에서 일견 '대권 경쟁'과도 닮아있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명작 '라이언킹'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역시 이 대표와 윤 전 총장의 갈등 국면에서였는데요.
이 대표는 SNS를 통해 윤 전 총장 주변에 권력욕을 부추기는 하이에나가 아닌, 밝고 긍정적인 멧돼지와 미어캣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쿠나 마타타 노래라도 같이 부르면서 좋은 사람들의 조력을 받으면 사자왕, 그러니까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썼습니다.
국민의힘 경선 버스가 아직 시동도 걸기 전이라서인지, 현재로서는 야권의 '영화 마케팅'은 주로 후보들의 '홍보용'이 아닌 상대방을 깎아내리기 위한 '공세용'으로 활용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정치 참여 선언'과 함께 자신과 닮은 애니메이션 캐릭터 '엉덩이 탐정'을 띄운 윤석열 전 총장 사례 정도가 기억에 남는 마케팅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요.
'정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인생 영화'로 야권 주자들은 어떤 작품들을 꼽는지 직접 물었습니다.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답변이 돌아왔는데, 홍준표 의원은 진솔·우직하고 착하게 인생을 사는 포레스트 검프 같은 인물이 삭막한 대한민국에도 많아져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하태경 의원은 거짓과 위선으로 쌓아 올린 권력의 무상함을 그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꼽으며, 국민을 따르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윤희숙 의원은 경제 이념전쟁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커맨딩 하이츠'를 꼽으며, 정치는 패거리 간 이권 싸움이 아닌 치열한 생각과 비전의 싸움이 돼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과거 바람직한 지도자상을 제시하며 영화 '위워솔져스'의 대사를 인용하기도 했습니다.
"'위워솔져스'라는 영화에서 대대장이 베트남전쟁 때 헬기에서 내리면서 부하들에게 했던 그 말을… 적진에 들어갈 때 내가 제일 먼저 그 땅을 밟을 것이고 거기에서 나올 때 마지막으로 나오겠다고…"
정치인으로서의 '철학'을 응축해 보여주는 수단이 되기도, 상대 후보에 대한 공격의 매개가 되기도 하는 '영화의 정치학'.
어찌 보면 대선 자체가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처럼 무수한 우여곡절의 연속으로도 보입니다.
캠프별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쏟아지고, 다시 쓰여지기를 반복할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