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롯데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한 김시진(54) 감독이 20년만에 다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이제 선수가 아닌 사령탑으로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위치다.
우승을 향한 구단의 염원이 강하고 팬들의 열정이 가장 뜨거운 롯데의 사령탑은 분명 부담스러운 자리다. 하지만 김시진 감독에게는 부담보다는 뚜렷한 목표 의식과 의지가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김시진 감독은 23일 CBS와의 인터뷰에서 "1992년 팀이 우승했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큰 보탬은 못됐다. 야구를 쭉 해오면서 시즌 최다승도 하고 최초로 100승도 했기에 나도 모르게 자존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감독을 맡기로 하면서 선수 때 못했던 것을 이제 감독으로서 팬들에게 보답해야 하는구나, 나에게는 한번의 기회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롯데 사령탑 자리를 두고 흔히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을 쓴다. 양승호 전 감독이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지 못했다는 이유로 계약기간 1년을 남겨두고 사퇴하면서 롯데 사령탑은 보기에 따라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김시진 감독은 '독이 든 성배'라는 표현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시진 감독은 "나도 분명히 남자다. 매일 승부를 하는 승부사다. 롯데 감독은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지도자들이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욕망을 갖는 자리다. 야구를 보는 수준이 높고 열정적인 팬들 앞에서 좋은 경기를 펼친다면 영광스러운 위치가 될 수도 있다. 롯데에 몸담는 동안 팬들에게 맞아죽든지, 영웅이 되든지 둘 중 하나다. 기왕이면 후자 쪽으로 가고싶다"라고 말했다.
김시진 감독은 "열마디 말보다는 한번의 행동이 중요하다. 말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는 참 쉽다. 그러나 요즘은 스킨십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선수의 투구폼을 잡아줄 때 같이 어우러져서 동작을 함께 하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진다. 감독은 권력의 자리가 아니다. 조력자 역할이다. 선수가 빛을 발했을 때 지도자는 선수로 인해 능력을 인정받는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다가가겠다"고 자신의 확고한 지도 철학을 소개했다.
하지만 '김시진 호'는 출범과 함께 위기를 맞았다. 김시진 감독이 롯데에 부임한 후 처음 맞이한 스토브리그의 분위기는 냉탕에 더 가까웠다. FA 시장에서 김주찬과 홍성흔, 올해 톱타자와 4번타자로 활약한 주축선수들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