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cutView - '한글, 손으로 읽다'...점자로 만들어도 우수한 우리글

노컷브이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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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장규석 기자
동남아에 이어 중동을 강타한 대장금,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거머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최근 전 세계인의 이목을 단번에 휘어잡아 버린 싸이의 강남스타일. 전문가들은 이같은 한류 열풍의 뒤에는 '한글'이라는 우수한 문자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정작 대한민국에서의 한글은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CBS는 한글날을 맞아 날로 심화되고 있는 우리 일상속의 '한글 파괴 현상'을 짚어봤다. 그렇다면 과연 한글을 한 번도 눈으로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들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일까.

"독일 슈투트가르... 슈투트가르트는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교실에 낭랑한 책 읽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서울 맹학교 중학교 2학년 교실, 윤정식(14)군은 어려운 단어에서 잠시 주춤했지만 막힘 없이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냥 낭독 속도로만 봐서는 여느 중학생과 구분이 가지 않는 윤 군의 검지 손가락 두 개는 마치 스캐너 마냥 쉴 새 없이 책 위를 내달렸다.

여느 중학교 교실과 다를 것 없는 풍경 속, 또박또박 책을 읽고 있는 윤 군은 태어나서 한 번도 한글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이다.

음성 기관의 모양과 하늘, 땅, 사람의 모습을 본 떠 만든 세계 최고의 소리문자 한글, 그러나 그 모양을 전혀 모르는 그에게 한글은 어떤 의미일까.

"음.. 초등학교때 배우는데 1년 걸렸는데요. 그래도 한글 점자는 우리 말이다보니까 영어보다는 더 배우기 쉬운것 같아요. 필기를 할 때도 확실히 영어보다 한글 점자가 오타도 적게 나는 편이에요."

윤 군이 점자정보단말기를 내밀었다. 9개의 버튼이 달린 점자 입력 키와 32칸의 점자 표시가 가능한 점자 출력 패드, 음성 출력을 위한 스피커 등을 갖춘 일종의 키보드이자 모니터인 셈이다.

단말기로 필기를 하다보면 확실히 영어보다 한글이 오타가 적게 나온다는 것이 윤 군의 설명이다. 시각장애인들에게도 한글은 엄연히 과학적인 문자인 것이다.

윤 군에게 한글은 3개의 점이 2열 종대로 늘어선 여섯 개의 튀어나온 점으로 이뤄져 있다.

여섯개의 점이 어떻게 배열되는지에 따라 자음과 모음 기본 28자와 이중모음 9자, 그리고 종성 자음 14자까지 모두 51자로 구성된다.

영어 알파벳보다 점자 수가 많지만 한글은 점자로서도 확실히 우수한 점이 많다.

본인이 시각장애인이기도 한 서울 맹학교 최두호 교사는 "알파벳만 배운다고 하면 한글보다 점자 수가 적어서 수월하지만 영어는 한 단어가 10개 이상의 알파벳으로 된 경우도 많아서 읽기가 복잡하고, 그래서 200여개의 약어가 있는데 이것을 익히고 활용하려면 1년 정도가 걸린다"고 말했다.

최 교사는 "반면 한글 점자는 초,중,종성으로 소리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복잡하지가 않고, 한글 묵자(墨字: 점자의 반대말, 보통 글씨를 말함)처럼 한번 배우면 쉽게 읽고 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소리를 조합해서 만드는 과학적인 한글은 점자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한글 모음의 모양은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점자를 만드는데도 매우 유용하게 쓰였다.

한글 점자는 일제 치하인 1926년 맹학교의 전신인 제생원에서 고(故)박두성 선생이 일제의 눈을 피해 비밀리에 창안한 것이다. 한글점자는 훈맹정음(訓盲正音)이라고도 불리며 창제자인 박두성 선생은 시각장애인들에게는 세종대왕만큼이나 추앙받는 인물이다.

시각장애인들은 배우기 쉬운 한글점자에 감사하며 해마다 점자 창안일인 11월 4일에 따로 기념식을 갖고 박두성 선생의 생가와 묘소를 찾고 있다. 최근에는 시각장애인 협회 등을 중심으로 박두성 선생의 생가를 복원하고 묘소를 새로 단장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CBS는 지난 한 주 동안 연속보도를 통해 우리 생활에서 한글이 파괴되고 있는 현장을 생생히 돌아봤다. 과연 우리는 한글의 모양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시각장애인들보다 더 한글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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