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100주년, YTN 특별 기획, 두 번째 시간입니다.
3.1 운동의 열기 속에 임시정부가 태어났지만, 점차 힘을 잃고, 그 이름마저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25살 청년의 놀라운 의거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구심점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윤봉길 의사입니다.
최민기 기자가 그 역사의 현장을 다시 둘러봤습니다.
[기자]
지금은 루쉰공원으로 이름이 바뀐 상하이의 홍커우공원입니다.
도시락 폭탄 의거의 무대로 유명한 장소기도 하죠.
그리고 이곳엔 스물다섯 살, 짧은 생을 마감한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기념관이 있습니다.
임시정부는 세워졌지만, 정부라는 이름마저 지키기 어려운 암울한 시기가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1932년 4월, 상하이를 차지한 일본이 전승 기념식을 겸한 일왕의 생일 축하를 홍커우공원에서 열면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김구 선생은 윤봉길 의사와 함께 일본군을 향해 폭탄을 던지는 의거를 계획합니다.
의거를 위한 폭탄은 물통.
도시락 폭탄은 자결용이었습니다.
"제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 6원을 주고 산 것인데, 선생님의 시계는 2원짜리입니다."
저는 이제 1시간밖에 더 소용이 없습니다."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
## -백범일지- 中
의거는 성공리에 끝나고 일본과 항전하던 중국은 크게 열광했습니다.
의거에 감명받은 장제스 총통도 임시정부에 대한 지원을 약속했습니다.
[쑨커즈 / 상하이 푸단대 교수 : (윤봉길 의거는) 중국 인민들의 항일 의식을 고무시켰습니다. 많은 이들이 중국 청년들이 윤봉길을 배우고 일본에 행동으로써 보여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날의 의거는 국권 침탈 이후 갈수록 시들해가던 독립운동의 불꽃도 되살렸습니다.
백범일지는 윤 의사의 의거 이후 교포들의 후원금이 놀랍도록 늘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나 의거의 주인공, 윤봉길 의사는 현장에서 체포돼 일본에 끌려가 처형당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결연한 모습을 잊지 않았던 윤봉길 의사.
윤 의사의 의거는 우리 역사의 자긍심도 크게 드높였습니다.
YTN 최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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