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 간 정상회담이 추진된 건 물론 처음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무산됐고, 다를 줄 알았던 이번 회담 역시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어온 북미회담의 역사를 우철희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북한의 영변 핵시설을 놓고 북미 간 험악한 말들이 오가던 1차 북핵 위기.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전격 방북해 김일성 주석을 만납니다.
넉 달 뒤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하고 경수로 건설을 약속받으면서 위기를 넘깁니다.
1999년에도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됐습니다.
북미 관계를 개선하려던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정책에 힘입어 북미 고위급 인사가 평양과 워싱턴을 오가고,
클린턴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회담도 논의됐습니다.
하지만 중동 사태 악화에 우선순위가 밀리면서 끝내 성사되지 못합니다.
대북 강경일변도의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북미 관계는 악화일로에 들어섭니다.
[조선중앙TV(2002년) : 조미 기본합의문에 따라 연간 50만톤 중유 제공을 전제로 동결하였던 핵시설을 즉시 해제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는 다를까 기대를 모았던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은 문재인 대통령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면서 더욱 힘을 받는 듯 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 美 대통령 : 노벨 평화상요? 문재인 대통령이 그렇게 제안한 것에 감사합니다. 매우 관대한 말씀이고, 그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하지만 회담을 한 달도 채 남겨놓지 않은 상황에서 북미 간 극도의 신경전이 이어졌고 몇 차례 으름장이 오가는 사이 북미 정상회담은 다시 멀어졌습니다.
YTN 우철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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