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진실 씨에 이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야구 스타 고 조성민 씨가 오늘 오전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습니다. 화장 절차를 마친 고 조성민 씨의 유해는 배우 장진영 씨와 가수 채동하 씨가 잠든 분당의 한 추모공원에 안치됐는데요.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 기자 연결해 자세한 소식 들어보겠습니다. 안지선 기자.
네, 경기도 광주시에 위치한 분당스카이캐슬 추모공원에 와 있습니다.
Q) 고 조성민 씨의 안치식이 진행됐나요?
A) 네, 고 조성민 씨가 한줌의 재로 변해 오늘 오후 1시쯤 이곳 추모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엄숙하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 안치식이 거행됐는데요. 고인의 유족인 아버지와 어머니, 상주인 누나가 그 뒤를 따랐고, 야구계 동료들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습니다. 안장을 마친 가족들은 추모공원 제례실에 모여 마지막 기도로 고인의 평온을 기렸는데요.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눠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면서 유족들은 또 다시 오열했고, 장례식 내내 담담한 표정으로 강건한 모습을 보였던 아버지조차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Q) 장례식 내내 꿋꿋했던 준희 양이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고요?
A) 네, 고인의 자녀인 환희·준희 남매가 꿋꿋하게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모습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고 있습니다. 어린 남매는 장례식 내내 자신들을 향한 세간의 시선을 뒤로 하고, 의젓하고 담담하게 상주 노릇을 했는데요. 그러나 장지에 도착해 안장식이 진행되면서 아빠와 마지막 인사를 고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어린 준희 양이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환희 군이 동생을 다독이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마저도 보는 이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는데요. 남매의 곁을 지킨 최진실 씨의 어머니 또한 한 켠에서 흐르는 눈물을 삼키는 모습이었습니다.
Q) 고인이 고 장진영 씨와 가수 채동하 씨 곁에서 영면에 들어갔다고 알려졌는데요?
A) 네 그렇습니다. 이곳 추모공원에는 앞서 세상을 떠난 배우 장진영 씨와 가수 채동하 씨가 영면한 곳으로도 유명한데요. 고 장진영 씨는 지난 2009년 암투병 끝에 사망 했고, 고 채동하 씨는 지난 2011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바 있습니다. 고 장진영 씨의 유해는 2010년에 고향인 전라북도 임실군에 위치한 '장진영 기념관'으로 이장된 상태인데요. 이곳 추모공원에는 추모관만 현재 남아있습니다.
Q) 오늘 오전에 있었던 발인식에 야구계 인사들이 참석했다던데요, 슬픔을 나눈 이들에 대해서도 전해주시죠?
A) 네 오늘 오전 서울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진행된 발인식에는 유족들과 야구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는데요. 전 에이전트 대표 손덕기 씨가 위패를 들고 운구 행렬 가장 앞에 섰으며 고인의 사촌동생이 영정 사진을 들었습니다. 한화의 정민철 코치와 넥센의 홍원기 코치 등 야구계 인사들이 운구에 나섰는데요. 홍 코치는 운구 도중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고, 다른 동료들 역시 흐느끼며 눈물을 삼켰습니다. 고인과 학교 선후배로 각별한 인연을 나눴던 허구연 MBC 해설위원은 "야구에 대한 한이 남았을 거라며, 하늘나라에 가서 하고 싶은 야구를 하길 바란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습니다.
Q) 고 조성민 씨는 90년대 중후반 큰 인기를 누린 그야말로 최고의 야구 스타였죠, 야구 선수 조성민 씨가 걸어온 길도 짚어주시죠?
A) 야구 선수 조성민 씨의 인생은 신일고 재학시절부터 화려하게 펼쳐집니다. 당시 황금사자기와 봉황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이름을 날리는 야구계 샛별로 주목을 받았고, 고려대 시절 박찬호. 임선동 씨와 함께 황금 92학번으로 불리며 국내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는데요. 1996년 일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입단해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차세대 야구 스타로 주목 받다 부상으로 2002년에 귀국했습니다. 이후 2005년에 한화 이글스에 입단해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초라한 성적으로 2007년 은퇴를 했는데요. 그럼에도 야구에 대한 열정만은 그대로였습니다. 2008년엔 야구해설가로 2011년엔 두산 2군에서 재활 코치로 활동하며 새로운 야구 인생을 시작하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지난 해 말 재계약에 실패한 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비운의 야구 스타'로 남게 됐습니다.